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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銀行 - 일본무존 갑 천원 견양권 簡易見本券 Japan Bank of Japan 1000 Yen ND (1945) Pick 45s 日本武尊千元券

화폐 수집 Collection

by 集賢堂 2018. 6. 19.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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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銀行兌換券 「 此券引換に金貨千 圓相渡可申候也」

• 일본 신화의 영웅 야마토 타케루를 도안으로 함으로써 무력을 통한 영토 확장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簡易見本券으로 조그마한 견본 도장이 앞뒤로 두 개씩 날인되어 있습니다.


천원권 발행 대장성고시  - 千圓券 發行 大藏省告示

 

대장성고시 제178호

 

昭和 16년(1941년) 법률 제14호 제3조의 규정에 의거, 

태환은행권조례 제3조에 규정된 것 이외, 일본은행에서 발행하는 태환은행권의 종류에 천원권을 추가함 

본년 4월 20일부터 이를 발행하며, 그 견본 약도는 왼쪽과 같음 


태환은행권 천원

 

세로 100mm

가로 172mm

 

용지 은화 삽입

봉황모양 및 '1000' 숫자 요철 은화

 

앞면

문자와 함께 윗부분 모양 흑색

아랫부분 모양 황색, 담자색, 담갈색, 담록색

인장 적색

기번호 흑색

 

뒷면

문자와 함께 윗부분 모양 자갈색

아랫부분 모양 등황색, 담자색

인장과 함께 잘려진 문자[뒷면 일본은행] 적색

 


 

무존 천원권 분류

 

무존천원권은 한국 ‘무존천원권’, 일본 ‘무존천원권’, 대만 ‘무존천원권’ 3종류로 분류됩니다.

 

한국 무존 천원권은 앞면에 '朝鮮銀行券'인장 가쇄.

대만 무존 천원권은 뒷면에 '株式會社臺灣銀行', '頭取之印' 인장 날인.

 

일본 무존천원권의 판번호는 1~9번. 제조량 기호당 90만 장씩 810만 장.

대만 무존천원권의 판번호는 6-7번.

한국 무존천원권의 판번호는 2번.

 

대만 무존천원권 견본은 판번호가 6번, 앞면에 견본 인장 날인, 뒷면에 "SPECIMEN" 인장 날인.

일본 무존천원권 일반번호 견본은 앞면과 뒷면 양쪽에 소형 "견본" 인장 날인 혹은 "SPECIMEN" 인장 날인.

 


 

일본은행 무존 천원권 武尊 千円札 일화

 

1945년 8월 17일, 종전 불과 이틀 뒤인 이날 일본 은행에서 일본 武尊(야마토타케루) 도안의 새 천엔 지폐가 발행되었습니다. 일본 화폐 사상 처음 발행된 천원권이지만, 당시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현재 50만엔 정도에 해당하는 초고액 지폐입니다.

 

이 지폐는 인플레이션되었을 때를 위해 1941년부터 제조된 것이지만, 전쟁 동안, 계속 일본은행 금고에 잠들어 있다가, 전쟁이 끝나고서야 드디어 빛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종전 후 일본은 반년 만에 물가가 2배로 급격히 상승하며,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이를 억제하기 위해 천엔 지폐를 발행한 반년 뒤인 1946년 2월 25일  ‘신 화폐 교환’을 실시합니다. 이것은 그 시점에서 유통되고 있는 5엔권 이상의 모든 지폐를 무효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5엔권 이상의 소유자는 11일 이행 기간 안에 그것을 모든 은행에 일단 예치하고 신 화폐로 환불 받아야 했습니다만, 이때의 인출은 1명 당, 100엔까지 제한했습니다.

 

천엔 지폐는 고액권에다가, 발행 후 반년 밖에 되지 않아 대부분 유통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 화폐 교환으로 당연히 거의 모두 회수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이 지폐는 오늘날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는 ‘환상의 지폐'가 되었습니다. 당시 그 지폐를 든 채 외국에 가 있어서 교환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손에 남아 있는 정도일까요? 그 실물은 일본 은행 화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신 화폐 교환으로 태어난 새로운 지폐는 1엔의 도안은 니노미야 손토쿠, 5엔 채문, 10엔이 국회의사당, 100엔이 쇼토쿠 태자였습니다. 1946년 일본 국가 공무원(고등문관) 초임이 540엔이라고 합니다.

 

(출처: http://www1.ffortune.net/social/seso/nihon-today/takeru1000.htm) 

 


 

대만은행 무존 천원권 일화

 

대만은행 무존 천원권은 1945년 8월 19일에 발행되었습니다. 일왕 항복 이후, 중국정부가 대만을 접수하기 이전, 일본 정부는 발행준비금이 부족하자, 일본에서 천원권을 대만으로 항공 운송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지폐를 운송한 총독부주계과장 토모미 슌지(鹽見俊二)는 우선 일본공무원, 관원들에게 이듬해 3월까지의 반년치 월급과 퇴직금을 지급하고, 따로 전쟁 말기 요새 건설을 책임진 공사 인원들에게 지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타 경비는 모두 이 지폐로 지급하였습니다.

 

이렇게 남발된 지폐는 모두 일본 군인, 관리, 공무원(대만 인구의 1/10)에게 돌아갔고, 그들은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되었습니다.

 

일본인(30만), 일본 군인(50만)의 귀국 실시 당시, 일본 당국은 대만에 있던 다량의 화폐가 본국으로 돌아와 다시 일본에서 유통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따라서 귀국하는 일본인에게 현금 일천원만 갖고 오도록 하였습니다.

 

갖고 오지 못한 재산은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재대만 일본인들은 자포자기식으로 돈을 마구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전후 대만에는 물자가 별로 없었고, 각지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습니다. [일본인의 만행]

 

계속 고액권이 유통되다가는 대만 경제에 위협이 되므로, 국민당 정부는 대만을 공식적으로 접수한지 2주일 후, 민국 34년(1945년) 11월 7일 ‘台灣省行政長官公署財政處’를 통해 ‘署財字第109號’를 포고하였습니다.

 

‘臺灣省行政長官公署處理省內日本銀行兌換券及臺灣銀行背書之日本銀行兌換券辦法’에 의하면, 34년 11월 8일부터 ‘무존상 천원권’의 시장 유통을 동결, 금지하였습니다. 이를 위반하고 계속 시장에서 사용하는 경우 몰수 조치하였습니다.

 

이외에 이 지폐를 보유한 자에게 11월 10일부터 12월 9일까지 지정된 은행(대만은행, 화남은행, 창화은행, 대만공상은행, 대만저축은행, 권업은행, 삼화은행, 각 은행의 지점, 대리점)에 ‘대만특종 정기예금’으로 납입하도록 하고, 기한을 넘긴 뒤로는 받지 않았습니다.

 

1개월 이후, 규정대로 입금되지 않은 지폐는 전부 무효로 되었습니다. 이 법령에 의해, 대만에서 무존 천원권이 유통된 기간은 1945년 8월 19일부터 1945년 11월 7일까지입니다.

 

발행 총액은 ‘대만광복전후화폐사술’에 의하면 총 ’784,280,000원(약 78.4만장)’이었습니다.

 

(출처: http://long11281128.pixnet.net/blog/post/362706458)

 

- 가오싱 항구에서 짐 검사 받는 그림. 현금 일천원만 휴대할 수 있게 하였다.

- 한 사람 당, 현금 일천원만 휴대하도록 제한하였다. 우체국 통장은 가지고 갈 수 있었고, 은행 예금은 은행 예금 증명을 가지고 갈 수 있었다. 다만 언제 인출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 발가벗고 검사받았다.(남자는 헌병이, 여자는 중국의 젊은 여성이 검사하였다.) 짐을 뒤졌는데, 심지어 돗자리 뒷부분도 검사하였고, 손에 든 일천원도 검사받아야 했다.

 

日人「塩澤亮」所繪著《從臺中雙冬疏散到內地復員─ 一位臺北女子師範學校教授在戰爭末期的紀錄》

 

당시 귀국하는 일본 군민은 대만에서 ‘대만은행권’을 ‘일본은행권’으로 교환하여야 했습니다. 당시 은행에서는 회수한 은행권을 폐기하였습니다.

 

(출처: http://long11281128.pixnet.net/blog/post/352789613)

 


 

1945년 당시 최고액권이었던 이 지폐가 돌연 유통 정지가 되자, 이 돈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사용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노력이 다음과 같은 지폐를 낳았습니다.

 

(출처: http://long11281128.pixnet.net/blog/post/352789613)

 

이 지폐는 대만은행권 무존천원권인데, 일본인이 자국 내에 들고가 사용하려 했던 것입니다. 대만은행권인 것을 속이기 위해 뒷면에 날인된 '주식회사 대만은행' 부분을 지웠습니다.

 

 

지폐가 부족해지자, 일본 정부에서는 회수한 구권에다가 증지부를 붙여 재유통하였습니다. 단, 이때 민간에서 위조 증지부를 붙인 구권이 유통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지폐 역시도 천엔 증지부 대신에 백엔 증지부 2장을 붙여 위조한 것입니다.

 


 

초상 도안은 일본 황실 구성원의 얼굴을 참조해서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쇼와 일왕의 의형인 구니 아사아키라(久邇朝融, 1901~1959)의 초상 사진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아 제 생각에는 이 사람을 모델로 한 것 같았습니다만, 메이지

천황(明治天皇)과 다카마쓰노미야(高松宮)가 모델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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