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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부터 화폐수집을 한 이인구 씨의 글 - 코인 편력 40년기

화폐

by 集賢堂 2021. 4. 7.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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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화폐수집을 시작한 것은 아홉살 때부터였다. 그 당시 5리동전(일본화) 한 개를 가지고 엿 한가락 성냥 한 갑을 살 수 있었던 시대였으나 우리 민족은 일제통치의 압박을 받았던 수난기였었다. 이 5리동전이 유통 중지되는 바람에 가지고 있었던 몇 개 되는 동전을 버리기가 아까와 모은 것이 화폐수집의 시초였으며 그러다보니 집안에 돌아다니는 여러 개의 중국동전 중에 섞여 있는 50전은화(일본화) 한 개의 은 빛깔이 다르기에 위조은화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돈은 은화가 아니고 주석(tin)으로 만든 시주화라는 것이었다.

 

이 소문을 들은 한 동네 살고 있는 일본인이 보고 그 50전 주석화 한 개를 80전~90전을 주겠다는 바람에 양도해 버렸다. 그 후 며칠 안 가서 그 주석화 한 개는 액면의 10배로 둔갑해서 5원에 다른 일본인 손에 넘어 갔다는 소문을 듣고 어린 마음에도 나의 무지한 소행에 자책을 느끼는 동시 분한 마음마저 치밀어 이로부터 화폐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다. 40년간 화폐수집을 하는 동안에 친지가족들에게 '쓰는 돈을 가지고 못쓰는 돈을 사들인다'고 핀잔을 받은 일이 수없이 있었고 심지어는 광증이 생긴 것이 아니냐고 비웃는 분도 있었다. 그러나 화폐 수집에 흥미를 가진 후부터는 도무지 손을 떼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이 'Collector의 병'인가 보다. 휴일이면 경향 각지의 골동품상이나 고전상을 다니며 먼지가 뿌옇게 묻은 고전(주로 엽전)을 손가락으로 이리 저리 헤쳐 내나름대로의 희귀한 고전을 찾아내어 사들일 때의 기쁨 또는 고전상에서 상인이 모르고 싸게 판 고전을 입수할 때에 느끼는 스릴은 인생의 즐거운 극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가난한 샐러리맨인 필자로서는 비록 고가의 희귀한 고전에는 손을 대지 못할망정 남이 돌보지 않는 흔해 빠지고 값싼 고전을 사들인 것이 현재 우리 나라와 중국 일본엽전이 무려 9천여종 기타 주화 및 지폐(외국 것도 포함) 등을 합하면 2만여종이 넘는다.

 

이 수집품 중에는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에 와서는 의외로 한 개 기 10만원을 호가하는 고전이 수십 개 있으니 대견하지 않을 수 없으며 무엇이든지 꾸준히 노력하면 성과를 얻는다는 신념을 갖게 된 것이다. 화폐수집하는 기간이 길수록 고난을 받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그 중에 특히 국제관계의 신의를 지키는데 필자가 가장 애를 태운 것은 5년 전에 '전문오십량' 창덕조선은행권 한 장을 입수하는 데 있었다. 이 지폐는 일본 Coin 전문지 'Bonanza'에서 지상으로 입찰한 것을 편지로 3만 5천'엔'에 낙찰봤다. 그러나 외환거래가 안되기 때문에 문화재관리국 및 일본 제일은행출장소 등에 편법 송금을 부탁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두달만에 재일교포 편을 이용하여 돈을 보내서 간신히 수중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일본에 여섯 번이나 편지를 내며 기한을 연장받아 아슬아슬한 순간을 넘긴 것이다. 이 지폐는 국내에 몇 장 밖에 없다는 희귀한 지폐로 알려져 있으며 어떤 고전수집가는 그 지폐 한 장에 15만 원을 줄테니 팔아달라는 부탁도 받은 일이 있었다. 이와같이 희귀한 지폐를 입수할 때의 기쁨이야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바가 있었다.

 

필자는 조용한 밤 중에 혼자서 여러 고전을 다루다가 명상에 잠길 때가 많다.

 

그때마다 녹슬은 고전 두서너 개를 골라 손바닥에 놓고 감상해보면 그 시대의 변천된 여러 가지 일들이 눈앞에 방불하는 것같이 머리 속을 스쳐가며 한없이 흥취를 돋구어 주기도 한다.

 

고전수집을 하노라면 참고 문헌도 연구하게 되고 따라서 역사와 그 시대의 사회 제도, 경제발달과정 등을 광범위하게 알게 된다.

 

취미로서 수집한 고전이 귀중한 사료가 되고 문화재임을 깨달았을 때 이와같은 문화재가 외국에 유출되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면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약 3년 전에 있었던 일로 전혀 모르는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분도 고전을 수집하고 있다는 것이며 저녁에 만나자는 것이기에 수집가로서는 상통하는 점이 있어 쾌히 응낙하고 나가 보니 융숭한 대접을 베풀지 않는가.

 

원래 술을 하지 못하는 나로서 과분한 대접을 받고 보니 의아심이 생겼으며 초면 인사에게 폐를 끼쳐드린데 대하여 마음이 개운치 않아 그 후 그분이 구하지 못했다는 제일은행(일본) 발권의 일원권 신구권 2매(시가 2만원 상당)를 보내고 마음의 빚을 갚은 일도 있었다.

 

요사이 수집가 또는 화폐상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 수가 많다.

 

그분들은 한결같이 고전감정과 고전분양을 부탁하는 것이어서 나의 권위를 반신반의해 가며 조심스럽게 응답을 하면서도 사실상은 정신적인 부담을 느낀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수집가로서는 자기 소장품의 전시회를 가지려고 염원하지 않는 분이 드물 것이다. 필자도 같은 심정을 가지고 국민은행 본점 신축 기념행사로서 지난 해 10월 25일부터 11월 15일까지 본점 3층에서 화폐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었는데 본인이 그 전시회를 주관하였었다.

 

출품화폐 총 3천 7백 12점 중에서 타인 찬조 출품 80백점을 제외하고서는 나의 소장품이어서 개인화폐전시회를 가진 기분이 들었었다.

 

조촐한 이 화폐 전시회를 주관했던 필자로서는 전시회를 열 때까지 혹시 남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당일 남진우 재무장관께서 전시회의 테이프를 끊음으로써 개막하였는데 의외로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아 비로소 마음의 안도감을 느꼈다.

 

수천 명의 관람객 중에는 '코인' 수집동호인을 비롯하여 정부요인, 장성급, 교수, 의사, 문사 등 각계각층의 명사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와같이 화폐에 많은 관심을 가진 관람객을 응대하고 보니 '코인'수집가의 한 사람으로서 본 전시회를 주관한 필자는 코인 수집편력 40년간에 처음 흐뭇한 보람을 느꼈으며 이 기회에 현재 문화재로서 소외되었던 우리 나라 고전(엽전)에 대하여 관계 당국과 국민 여러분이 보다 이해가 있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화폐수집가 이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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